"난 너의 모든 모습들을 기억해. 네 머리카락까지도."

 

 

영화 이야기 

 

  이 영화를 알게 된 건 지난 <희랍어 시간> 독서록에서 이야기했던 그 블로거 분의 글을 통해서였다. 나는 박스오피스에 굉장히 질려 있었고 영화의 재미를 깊이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찾아보고 좋아하는 영화들은 <화양연화>, <중경삼림>, <헤어질 결심>, <아가씨>, <석류의 빛깔>. 다 서울 신촌 홍대 부근 독립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그런 영화들이 아닌가. 

 

 지난 <희랍어 시간>에서 언급한 그분의 블로그에 언급되는 몇 영화들의 클립들을 유튜브로 찾아 보며 그 영화들을 언젠가는 볼 수 있기를 고대했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의 몇 독립 영화관 상영 시간표를 인스타에서 보게 되었고, 12월에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퐁네프의 연인들>을 여러 독립 영화관에서 상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들뜬 마음으로 예매를 하고 보기 전날 기대에 찬 상태로 있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기억이 난다. 

 

 영화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노숙자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찌질한 것 같기도 하고, 미쳐있는 것 같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굉장히 흡입력 있는 감정선의 영화라서 그런가 보는 나까지도 퐁네프 교각의 노숙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랑인지 광기인지 알 수 없는 격동의 감정을 느끼며 영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주인공인 알렉스와 미셀의 이야기도 볼만 했지만 이들 옆에 있던 노숙자 아저씨의 행동과 대사들 또한 인상적이었다. 올해도 보고, 내년에도 보고, 내후년에도 보고 자주 보며 곱씹고 싶은 영화였다.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네 가지였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불꽃 터지는 교각에서 춤추는 장면(이후 몇 가지 액티비티를 하는 부분까지), 알렉스가 미셀을 잃지 않기 위해 미셀을 찾는 실종 포스터들을 불태우던 것, 미셀이 알렉스에게 술을 먹이고 눈 치료를 위해 사라진 장면, 알렉스의 출소 이후 다 지어진 퐁네프 다리에서 만난 후 다리 밑으로 떨어진 장면까지.

 

 이걸 본 게 작년 12월 31일이었는데, 이번에 재개봉했다고 해서 또 보러 갈 예정이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하기도 하고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재개봉하는 일이 많다. 마음 같아서는 서울에 1년 살면서 내내 독립 영화관을 누비는 시네필로 살고 싶지만 앞으로 3년 동안은 준비해야 하는 일도 있고, 그 일을 위해 돈도 모아야 하므로 내년에 잠시 서울에서 살게 되면 그때나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을까 싶다.

 

 

관련 영상/사운드트랙

 

 

 

 

 

 

 

"나에게 있어서 삶과 영혼은 고통이다."

 

 

영화 이야기 

 

  이 영화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의 표현력에 비해 이 영화는 담고 있는 미학과 내용이 너무 커서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한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끌리긴 했었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12월 말에 보게 되었다. 사야트 노바라는 아르메니아 시인의 삶을 시각적인 예술로 표현한 내용인데, 여러 가지로 난해한 부분이 많은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의 어느 부분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첫 대사가 날 몰입으로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있어 삶과 영혼은 고통이다."

 

 이후 나오는 악기 소리들과, 여러 행위 예술들, 그리고 정교회적 이미지 등등. 영상미가 너무 내 스타일이었지만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간 사람이 이해하기엔 많이 어려운 부분도 꽤 있었다. 그래도 보는 내내 눈과 귀, 머리 모두 만족스럽게 하는 영화였고 내 인생 영화가 되었다. 한 번만 볼 영화가 아니라 삶에 걸쳐 여러 번 봐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몇 주 전에는 DVD를 사두었다. 다른 영화와 책을 보느라 지금은 잠시 접어두고 있지만.

 

관련 영상/사운드트랙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영화와 나의 이야기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2025년 5월이었다. 5월 1일에는 <중경삼림>을 보는 거라고 하길래 <중경삼림>을 봤다. 처음 봤을 때는 이게 왜 명작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왕가위 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보고 싶어졌고, 다음 작품으로 고른 영화가 이 <화양연화>였다. 당시 집을 이사해서 새로 이사온 집에서 불을 끄고 이 영화를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운드트랙도 찾아 듣고 영화 스틸컷도 모으기도 했었다. 그러다 그해 12월에 재개봉한다는 희소식을 듣고 잔뜩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12월 31일 재개봉이라 김이 팍 식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재개봉 겸 연말에 문화의날을 맞아 보게 된 세 편의 영화 중 가장 마지막 영화였다. 피곤한 상태에서 봐서 중간에 몇 번 졸듯 말듯한 상황들이 왔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였고, 이번에 재개봉한 특별판은 왕가위 감독이 극장에서만 상영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을 엄청 눈독들여서 봤었다. 

 

 이 영화에 깊이 빠질 수 있었던 이유는 첸 부인과 비슷한 감정선을 겪어본 적이 있어서였다.(영화 속 첸 부인과 차우처럼 배우자가 있거나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느낀 건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 첸 부인과 차우는 비슷한 부분이 굉장히 많다. 각자의 배우자와 소원하다던가, 서로의 물건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는데 배우자가 외국에서 사준 거라 모른다고 답한다던가 등등. 나도 그랬다. 누구한테 그런 감정을 느낀 건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내용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과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어느 한 spot에 마주치지 않았다면 전혀 볼 일이 없었던 그런 사이였다. 같은 시기에 같은 공연을 본 적이 있고, 맞물리는 시기에 많이 어두운 시기를 지났다. 그리고 가족 관계 수가 똑같았고 그 가족 속 놓여있는 포지션도 동일했다. 그리고 사유하는 것에 교집합이 있었다. 꽤 마이너한 부분이라 알고 있는 사람도 찾기 힘든데 말이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 똑같은 철칙이 하나 있었고 그걸 처음으로 서로에게 깼었다. 마치 짜놓은 것처럼 절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 사람과 나는 삶에 있어 완전한 대척점에 있었고, 지금도 대척점으로 향하고 있다. 자란 환경도 다르고 다루는 분야도 다르며,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도 많이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일시적인 이벤트로 서로를 알게 됐고, 각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향해 떠나고 있다. 그 사람의 미래에 나는 없고, 내 미래에 그 사람은 없다. 그냥 찬란한 어느 한 시간에 잠시 만났던 것 뿐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마 시간이 좀 지나 내 앙코르 와트가 될 어느 종이 위에 풀 것이다. 당사자한테는 전혀 풀지 못할 말들을 시원하게 풀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만약에 그 당사자가 이 글을 보게 된다고 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끔. 

 

 편의점 장면이 추가된 특별판이냐, 그냥 일반판이냐 물으면 나는 특별판에 손을 들 것 같다. 그 편의점 장면이 내겐 꽤 많이 인상적이었다. 뭐라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말하기 힘든데, 그 편의점 장면이 없이 재개봉했다면 굉장히 아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어설프게라도 이뤄진 그 장면이 내게는 없을 그런 장면이라 더 깊이 와닿았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영화는 내가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어떤 감정인지 정리하지 못했던 나에게 정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준 그런 작품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환상 속 결말을 쥐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영원히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관련 영상/사운드트랙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영화와 나의 이야기 

 

  연말이 문화의 날이길래 영화를 세 편을 봤다. 그 세편 중 가장 일찍 본 영화가 이 영화였다. 필름포럼에서 봤는데, 관람객이 나 포함 세 명이었다. 들어가서 보는데 초반은 그냥 독립영화 느낌이었고, 중반부터 너무 보기 힘들었다. 윤희와 새봄이의 모녀관계가 불과 몇달 전 세상을 떠난 내 친구와 똑같아서. 그것만 그랬으면 괜찮았을텐데 후반부에서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쥰과 윤희가 만나는 장면에서 쥰이 하는 말이 내 친구가 죽고나서 한달 뒤에 꿈에 나와 나한테 했던 말이랑 너무 비슷했어서. 그리고 나중에 내세에서 만나게 되면 같은 말을 해줄 것 같아서. 영화 끝날 때까지 계속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영화는 분명 퀴어 영화였고, 나와 내 친구는 성애적인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난 이 영화가 너무 내 얘기 같았다. 죽은 친구를 영화에서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보고 싶지 않다고 매번 말했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내게 그 친구와의 기억이 고통으로 변했다. 이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그렇게 도망다녔는데 결국 이 영화로 그 고통을 직면하게 됐다. 그 친구가 죽은 이후 그 친구를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게 싫었다. 지금도 싫다. 그래서 엄청 도망다녔다. 귀로 그 이름을 듣는 게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 연미사도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와 같이 누볐던 대전과 용산은 거의 가지 않으며, 그 친구가 죽기 전 무한반복해서 들었던 아이유의 <겨울잠>과 <네버엔딩스토리>는 1초도 듣기 싫어서 그 노래가 나오면 이어폰을 끼워 버린다.

 

 그 친구가 살아있을 때도 난 연고 없는 곳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나고 자라 떠나본 적 없는 이 땅에 너무 상처가 많았다. 10년 가까이 연속적으로 겪은 수많은 실패들과 못된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상처받았던 모든 기억이 이 땅 곳곳에 너무 많다. 어디를 가도 좋았던 기억보다는 상처받았던 기억이 더 많이 난다. 그랬던 내게 친구의 죽음은 떠날 마음을 더 확고하게 해주는 일이었고, 그래서 난 작년 9월부터 떠나기 위해 가기로 결정한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고 있고 돈을 모으고 있으며, 이곳에 정을 점점 떼고 있다. 원래도 이 곳에 정이 붙어있던 건 아니었지만 더 지겨워졌고 더 여기서 지내고 싶지 않아졌다. 내게도 여기가 아예 다른 나라처럼 느껴질 날이 올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 기억도 없는 그 나라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하고 싶다. 지금으로선 떠나면 아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이 영화도 내게 그런 영화였다. 너무 아파서 정을 붙일 수 없었다. 이 영화는 내게 너무 아픈 영화이다. ost만 들어도 몸이 반응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관련 영상/사운드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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