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영화와 나의 이야기
연말이 문화의 날이길래 영화를 세 편을 봤다. 그 세편 중 가장 일찍 본 영화가 이 영화였다. 필름포럼에서 봤는데, 관람객이 나 포함 세 명이었다. 들어가서 보는데 초반은 그냥 독립영화 느낌이었고, 중반부터 너무 보기 힘들었다. 윤희와 새봄이의 모녀관계가 불과 몇달 전 세상을 떠난 내 친구와 똑같아서. 그것만 그랬으면 괜찮았을텐데 후반부에서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쥰과 윤희가 만나는 장면에서 쥰이 하는 말이 내 친구가 죽고나서 한달 뒤에 꿈에 나와 나한테 했던 말이랑 너무 비슷했어서. 그리고 나중에 내세에서 만나게 되면 같은 말을 해줄 것 같아서. 영화 끝날 때까지 계속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영화는 분명 퀴어 영화였고, 나와 내 친구는 성애적인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난 이 영화가 너무 내 얘기 같았다. 죽은 친구를 영화에서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보고 싶지 않다고 매번 말했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내게 그 친구와의 기억이 고통으로 변했다. 이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그렇게 도망다녔는데 결국 이 영화로 그 고통을 직면하게 됐다. 그 친구가 죽은 이후 그 친구를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게 싫었다. 지금도 싫다. 그래서 엄청 도망다녔다. 귀로 그 이름을 듣는 게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 연미사도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와 같이 누볐던 대전과 용산은 거의 가지 않으며, 그 친구가 죽기 전 무한반복해서 들었던 아이유의 <겨울잠>과 <네버엔딩스토리>는 1초도 듣기 싫어서 그 노래가 나오면 이어폰을 끼워 버린다.
그 친구가 살아있을 때도 난 연고 없는 곳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나고 자라 떠나본 적 없는 이 땅에 너무 상처가 많았다. 10년 가까이 연속적으로 겪은 수많은 실패들과 못된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상처받았던 모든 기억이 이 땅 곳곳에 너무 많다. 어디를 가도 좋았던 기억보다는 상처받았던 기억이 더 많이 난다. 그랬던 내게 친구의 죽음은 떠날 마음을 더 확고하게 해주는 일이었고, 그래서 난 작년 9월부터 떠나기 위해 가기로 결정한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고 있고 돈을 모으고 있으며, 이곳에 정을 점점 떼고 있다. 원래도 이 곳에 정이 붙어있던 건 아니었지만 더 지겨워졌고 더 여기서 지내고 싶지 않아졌다. 내게도 여기가 아예 다른 나라처럼 느껴질 날이 올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 기억도 없는 그 나라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하고 싶다. 지금으로선 떠나면 아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이 영화도 내게 그런 영화였다. 너무 아파서 정을 붙일 수 없었다. 이 영화는 내게 너무 아픈 영화이다. ost만 들어도 몸이 반응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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