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의 모든 모습들을 기억해. 네 머리카락까지도."

 

 

영화 이야기 

 

  이 영화를 알게 된 건 지난 <희랍어 시간> 독서록에서 이야기했던 그 블로거 분의 글을 통해서였다. 나는 박스오피스에 굉장히 질려 있었고 영화의 재미를 깊이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찾아보고 좋아하는 영화들은 <화양연화>, <중경삼림>, <헤어질 결심>, <아가씨>, <석류의 빛깔>. 다 서울 신촌 홍대 부근 독립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그런 영화들이 아닌가. 

 

 지난 <희랍어 시간>에서 언급한 그분의 블로그에 언급되는 몇 영화들의 클립들을 유튜브로 찾아 보며 그 영화들을 언젠가는 볼 수 있기를 고대했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의 몇 독립 영화관 상영 시간표를 인스타에서 보게 되었고, 12월에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퐁네프의 연인들>을 여러 독립 영화관에서 상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들뜬 마음으로 예매를 하고 보기 전날 기대에 찬 상태로 있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기억이 난다. 

 

 영화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노숙자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찌질한 것 같기도 하고, 미쳐있는 것 같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굉장히 흡입력 있는 감정선의 영화라서 그런가 보는 나까지도 퐁네프 교각의 노숙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랑인지 광기인지 알 수 없는 격동의 감정을 느끼며 영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주인공인 알렉스와 미셀의 이야기도 볼만 했지만 이들 옆에 있던 노숙자 아저씨의 행동과 대사들 또한 인상적이었다. 올해도 보고, 내년에도 보고, 내후년에도 보고 자주 보며 곱씹고 싶은 영화였다.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네 가지였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불꽃 터지는 교각에서 춤추는 장면(이후 몇 가지 액티비티를 하는 부분까지), 알렉스가 미셀을 잃지 않기 위해 미셀을 찾는 실종 포스터들을 불태우던 것, 미셀이 알렉스에게 술을 먹이고 눈 치료를 위해 사라진 장면, 알렉스의 출소 이후 다 지어진 퐁네프 다리에서 만난 후 다리 밑으로 떨어진 장면까지.

 

 이걸 본 게 작년 12월 31일이었는데, 이번에 재개봉했다고 해서 또 보러 갈 예정이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하기도 하고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재개봉하는 일이 많다. 마음 같아서는 서울에 1년 살면서 내내 독립 영화관을 누비는 시네필로 살고 싶지만 앞으로 3년 동안은 준비해야 하는 일도 있고, 그 일을 위해 돈도 모아야 하므로 내년에 잠시 서울에서 살게 되면 그때나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을까 싶다.

 

 

관련 영상/사운드트랙

 

 

 

 

 

 

 

"나에게 있어서 삶과 영혼은 고통이다."

 

 

영화 이야기 

 

  이 영화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의 표현력에 비해 이 영화는 담고 있는 미학과 내용이 너무 커서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한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끌리긴 했었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12월 말에 보게 되었다. 사야트 노바라는 아르메니아 시인의 삶을 시각적인 예술로 표현한 내용인데, 여러 가지로 난해한 부분이 많은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의 어느 부분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첫 대사가 날 몰입으로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있어 삶과 영혼은 고통이다."

 

 이후 나오는 악기 소리들과, 여러 행위 예술들, 그리고 정교회적 이미지 등등. 영상미가 너무 내 스타일이었지만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간 사람이 이해하기엔 많이 어려운 부분도 꽤 있었다. 그래도 보는 내내 눈과 귀, 머리 모두 만족스럽게 하는 영화였고 내 인생 영화가 되었다. 한 번만 볼 영화가 아니라 삶에 걸쳐 여러 번 봐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몇 주 전에는 DVD를 사두었다. 다른 영화와 책을 보느라 지금은 잠시 접어두고 있지만.

 

관련 영상/사운드트랙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영화와 나의 이야기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2025년 5월이었다. 5월 1일에는 <중경삼림>을 보는 거라고 하길래 <중경삼림>을 봤다. 처음 봤을 때는 이게 왜 명작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왕가위 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보고 싶어졌고, 다음 작품으로 고른 영화가 이 <화양연화>였다. 당시 집을 이사해서 새로 이사온 집에서 불을 끄고 이 영화를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운드트랙도 찾아 듣고 영화 스틸컷도 모으기도 했었다. 그러다 그해 12월에 재개봉한다는 희소식을 듣고 잔뜩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12월 31일 재개봉이라 김이 팍 식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재개봉 겸 연말에 문화의날을 맞아 보게 된 세 편의 영화 중 가장 마지막 영화였다. 피곤한 상태에서 봐서 중간에 몇 번 졸듯 말듯한 상황들이 왔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였고, 이번에 재개봉한 특별판은 왕가위 감독이 극장에서만 상영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을 엄청 눈독들여서 봤었다. 

 

 이 영화에 깊이 빠질 수 있었던 이유는 첸 부인과 비슷한 감정선을 겪어본 적이 있어서였다.(영화 속 첸 부인과 차우처럼 배우자가 있거나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느낀 건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 첸 부인과 차우는 비슷한 부분이 굉장히 많다. 각자의 배우자와 소원하다던가, 서로의 물건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는데 배우자가 외국에서 사준 거라 모른다고 답한다던가 등등. 나도 그랬다. 누구한테 그런 감정을 느낀 건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내용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과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어느 한 spot에 마주치지 않았다면 전혀 볼 일이 없었던 그런 사이였다. 같은 시기에 같은 공연을 본 적이 있고, 맞물리는 시기에 많이 어두운 시기를 지났다. 그리고 가족 관계 수가 똑같았고 그 가족 속 놓여있는 포지션도 동일했다. 그리고 사유하는 것에 교집합이 있었다. 꽤 마이너한 부분이라 알고 있는 사람도 찾기 힘든데 말이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 똑같은 철칙이 하나 있었고 그걸 처음으로 서로에게 깼었다. 마치 짜놓은 것처럼 절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 사람과 나는 삶에 있어 완전한 대척점에 있었고, 지금도 대척점으로 향하고 있다. 자란 환경도 다르고 다루는 분야도 다르며,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도 많이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일시적인 이벤트로 서로를 알게 됐고, 각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향해 떠나고 있다. 그 사람의 미래에 나는 없고, 내 미래에 그 사람은 없다. 그냥 찬란한 어느 한 시간에 잠시 만났던 것 뿐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마 시간이 좀 지나 내 앙코르 와트가 될 어느 종이 위에 풀 것이다. 당사자한테는 전혀 풀지 못할 말들을 시원하게 풀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만약에 그 당사자가 이 글을 보게 된다고 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끔. 

 

 편의점 장면이 추가된 특별판이냐, 그냥 일반판이냐 물으면 나는 특별판에 손을 들 것 같다. 그 편의점 장면이 내겐 꽤 많이 인상적이었다. 뭐라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말하기 힘든데, 그 편의점 장면이 없이 재개봉했다면 굉장히 아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어설프게라도 이뤄진 그 장면이 내게는 없을 그런 장면이라 더 깊이 와닿았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영화는 내가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어떤 감정인지 정리하지 못했던 나에게 정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준 그런 작품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환상 속 결말을 쥐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영원히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관련 영상/사운드트랙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영화와 나의 이야기 

 

  연말이 문화의 날이길래 영화를 세 편을 봤다. 그 세편 중 가장 일찍 본 영화가 이 영화였다. 필름포럼에서 봤는데, 관람객이 나 포함 세 명이었다. 들어가서 보는데 초반은 그냥 독립영화 느낌이었고, 중반부터 너무 보기 힘들었다. 윤희와 새봄이의 모녀관계가 불과 몇달 전 세상을 떠난 내 친구와 똑같아서. 그것만 그랬으면 괜찮았을텐데 후반부에서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쥰과 윤희가 만나는 장면에서 쥰이 하는 말이 내 친구가 죽고나서 한달 뒤에 꿈에 나와 나한테 했던 말이랑 너무 비슷했어서. 그리고 나중에 내세에서 만나게 되면 같은 말을 해줄 것 같아서. 영화 끝날 때까지 계속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영화는 분명 퀴어 영화였고, 나와 내 친구는 성애적인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난 이 영화가 너무 내 얘기 같았다. 죽은 친구를 영화에서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보고 싶지 않다고 매번 말했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내게 그 친구와의 기억이 고통으로 변했다. 이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그렇게 도망다녔는데 결국 이 영화로 그 고통을 직면하게 됐다. 그 친구가 죽은 이후 그 친구를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게 싫었다. 지금도 싫다. 그래서 엄청 도망다녔다. 귀로 그 이름을 듣는 게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 연미사도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와 같이 누볐던 대전과 용산은 거의 가지 않으며, 그 친구가 죽기 전 무한반복해서 들었던 아이유의 <겨울잠>과 <네버엔딩스토리>는 1초도 듣기 싫어서 그 노래가 나오면 이어폰을 끼워 버린다.

 

 그 친구가 살아있을 때도 난 연고 없는 곳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나고 자라 떠나본 적 없는 이 땅에 너무 상처가 많았다. 10년 가까이 연속적으로 겪은 수많은 실패들과 못된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상처받았던 모든 기억이 이 땅 곳곳에 너무 많다. 어디를 가도 좋았던 기억보다는 상처받았던 기억이 더 많이 난다. 그랬던 내게 친구의 죽음은 떠날 마음을 더 확고하게 해주는 일이었고, 그래서 난 작년 9월부터 떠나기 위해 가기로 결정한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고 있고 돈을 모으고 있으며, 이곳에 정을 점점 떼고 있다. 원래도 이 곳에 정이 붙어있던 건 아니었지만 더 지겨워졌고 더 여기서 지내고 싶지 않아졌다. 내게도 여기가 아예 다른 나라처럼 느껴질 날이 올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 기억도 없는 그 나라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하고 싶다. 지금으로선 떠나면 아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이 영화도 내게 그런 영화였다. 너무 아파서 정을 붙일 수 없었다. 이 영화는 내게 너무 아픈 영화이다. ost만 들어도 몸이 반응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관련 영상/사운드트랙 

 

 

 

 

 

 

 

 

Why I converted from Protestant to Roman Catholicism?

원래 이에 대해 썼던 글이 있었지만, 업데이트 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다시 올려본다. 일단 난 4대째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양가가 그런 건 아니고, 친가 쪽이. 외가 쪽은 제사만 지내는 무

fuegoxlibre.tistory.com

 

지난 글에서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개인사나 사회적인, 역사적인 문제 때문에 개종한 것도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게 내 개종 고민의 시발점이었던 것은 맞지만 개종의 결정타는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개종하기로 한 원인은 개신교, 특히 한국의 복음주의 개신교의 여러 부분에 동의하지 못해서 개종한 게 컸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어떤 부분에 동의하지 못해서, 맞지 않아서 개종하게 되었는지 써보려고 한다.

 


 

1) 예배 방식

 

  개신교 다니면서 매번 의문이었던 부분이 세 가지였다. '이렇게 시끄럽고 과도한 액션을 취해야 하는가', '말씀 봉독 조금에 저렇게 긴(혹은 필요없는 이야기들을 하며) 부연설명이 필요한가', '이런 행위를 굳이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한 시간 반 씩이나 해야 하는가'. 교파마다 다르긴 하지만 성공회나 루터회 같은 고교회가 아닌 이상, 보통의 개신교 예배는 찬양 + 대표기도 + 봉독 + 설교 + 통성기도 + 축도로 이어진다. 가끔 사도신경을 외우고 시작하는 교회들도 있지만, 내가 간 대형교회는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찬양이 너무 길다. 찬양만 20~30분 정도 하는 것 같은데, 거룩한 느낌이나 진지한 느낌보단 콘서트 같았다. 그렇게 콘서트 같던 찬양이 끝나면 대표기도가 시작된다. 대표기도의 주제는 대부분 부흥 이야기나 '성령이 임해서 목사님이, 성도들이 ~하게 해주시고'와 같은 기도가 대부분이다. 괴로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어려운 이들에 대한 기도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후 말씀 봉독은 많아봐야 10줄 내외다. 그리고 설교라는 이름으로 이것에 대한 주석이나 개인 썰풀기가 40분 정도 이어진다. 이런 방식이 구약(혹은 묵시록)-시편-신약 서간-복음서 봉독의 형식을 취하는 전례교회에 비해 이게 성경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이후 부흥과 복음화(= 신자들 늘어나게 해달라~), 나라를 위한 기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를 놓고 10분 내외로 통성기도를 한다. "주여~~~~"하고 목사가 외치면 사람들이 손을 들고 감정에 취해서 소리치며 기도한다. 눈물을 흘리거나 방언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면 전례교회는 어떻게 할까? 크게 보면 입당송 + 성호경 + 고백기도/말씀전례(구약-시편-신약 서간-복음서 + 강론 - 보편지향기도)/영성체(사도신경+봉헌+주님의기도+평화인사+성찬)/파견(강복 - 파견성가)로 진행된다. 조용하고 경건하게 진행되며 고양된 감정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절차 안에 그리스도인이라면 기억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보편지향기도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때는 가난한 이를 위해, 난임 부부들을 위해, 자살의 유혹을 겪은 이들을 위해 등등 세계에 있는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렇게 전례(미사)에 참여해보고 나서야 내가 왜 개신교 예배가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알게 되었다.

 

 전례는 ‘감정의 발화’가 아니라 ‘신앙의 기억과 전통’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간단한 형식 안에 감정 고양만을 추구하는 것들이 들어있는 것보다 형식 안에 필요한 기도와 말씀들이 담겨있는 전례교회가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2) 꼬리 자르기

 

 내가 굉장히 싫어했던 부분이다. 어느 교회나 신자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꼭 나오는 이야기이다. '일부 교회의 만행으로 개신교 전체를 폄하하지 마세요', '노력하고 있는 목사님/산자들도 많아요', '쟤는 이단/사이비라 그래요', '우리 교회는 안 그래요'까지. 이 말들을 하나하나 분석해보기로 하자.

 

  • 일부 교회의 만행으로 개신교 전체를 폄하하지 마세요. / 노력하고 있는 목사님과 신자들도 많아요.
중세의 천주교는 굉장히 타락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 중에도 바른 삶과 선행으로 산 사람들이 분명히 많았다.(누가 그렇게 살았는지 궁금하다면 16세기에 살았던 가톨릭 성인들의 삶을 알아보면 된다.) 하지만 이 성인들이 선행을 하고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해서 가톨릭이 타락하지 않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일부 교황과 성직자들로 인해서 천주교 전체가 폄하당했다고 변호해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제 저 문장에 있는 중세/천주교/성직자(성인)들을 빼고, 현대/개신교/목사라는 단어를 대입해보자. 그러면 지금 개신교에 딱 맞는 문장이 된다.

 

 그리고 이 '일부'라는 말부터 굉장히 잘못됐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니케아 신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조건에 '하나되고 보편되며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되어 있다. 이 사람들을 일부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 교회와 저 사람들 모두 하나되지도 않고, 보편되지도 않다는 것을 스스로 천명하는 꼴이다. 일부라는 말을 뱉음으로써 '우리는 교회 조건 네 개중 두 개나 안 맞는 교회입니다'를 스스로 실토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문장이 왜 틀렸는지 보자. 특히 이 얘기를 할 때 방패로 내세우는 교회는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인데, 평소에는 대형교회와 시설 좋고 사람 많은 교회로 우르르 몰려가 예배하면서 왜 본인들 불리할 때만 개척교회 목사들이나 신자들을 찾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단 몇몇의 선한 사례가 구조적 타락을 상쇄할 수는 없다. 이는 위 문장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 쟤는 이단/사이비라 그래요.

 잘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이단/사이비이고 본인네 일이 아니라고 한다. 전광훈은 처음부터 자기 교단을 파서 목회를 했었나? 만민중앙교회는 처음부터 이단/사이비였나? 인분 먹이고 매 맞게 한 빛과진리교회는 예장합동인데, 예장합동도 이단/사이비라고 할 것인가? 조용기 목사는? 이런 방관과 꼬리자르기는 수많은 이단/사이비의 출현을 조장하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사이비'라는 말의 정의를 다시 보자.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사이비란 '겉으로는 비슷하나 본질은 다른 것'을 뜻한다. 겉으로는 교회 같아 보이지만 교회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타락한 교단과 교회들한테 적용하면 딱 맞는 말이 아닌가.

 

 

  • 우리 교회는 안 그래요.

 들을 때마다 제일 답답한 말이 단연 이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한 교회만을 놓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개별 교회를 묶는 교단과 많은 교회의 흐름, 신자들의 행동 흐름을 보고 비판하는 것이다. 위에도 말했지만 어느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해서 지금 교단과 교회들의 타락이 막아지지는 않는다.

 

 가령 개한테 물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 사람한테 개를 들이밀며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말하는 게 과연 옳은 언행일까? 그리고 '우리 개는 안 문다'라는 사실이 입질이 심한 수많은 개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덮을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3) 개신교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높다는 망상

 

 이 질문에 답해보자.

 

  • 천주교 신자들이 개신교는 이단이라면서 개신교회의 시설물 곳곳에 배뇨를 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욕을 먹는다면 그 이유는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서일까, 아니면 타 시설물에 들어와 오줌을 싸는 비도덕적 행위를 해서일까?
  • 스님들이 길거리에 나와 '부처열반 불신윤회'를 외쳤다고 해보자. 이 스님들은 당연히 욕을 먹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 스님을 욕하는 건 부처를 닮지 않아서일까, 종교를 강요해서일까?
  • 무슬림들이 학살과 전쟁을 일으킨다. 사람들이 무슬림들을 욕한다면 무슬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그런 걸까, 학살과 폭력을 자행해서 그런 걸까?

 

 어떠한 종교를 믿는 사람이 본인이 믿는 신을 잘 따르는지 아닌지, 도덕적으로 훌륭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이 종교인에게 바라는 건 오직 세 가지이다. 본인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으며, 타 종교를 비하하지 않고,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 현재의 개신교가 욕을 먹는 이유는 이 세 가지를 전부 어겨서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고사하고 상종하기 싫게끔 몰상식적인 행동을 하는데 사람들이 고운 시선으로 봐주기를 바라온 것이라면 다음 성경 구절을 떠올려보기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루카 6, 31)

 

 

 

4) 교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짓말

 

 종종 개신교 신자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다. "전례 교회(특히 천주교)는 너무 교리 중심이고 율법 중심이야. 개신교는 예수님의 사랑과 선행을 중시하지 교리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더 성경적이야." 혹은 "교리? 그게 뭐가 중요해? 내가 예수님과 친밀하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난 이런 사람들에게 반대로 물어본다.

 

  • 근데 왜 제삿날마다 싸워? 니들이 율법주의적라고 욕하는 천주교도 제사와 절이 허용되는데 왜 교리가 안 중요한 개신교는 절 안 해서 명절마다 분위기 흐리고 싸울까?
  • 근데 왜 성인 공경, 성모 공경을 우상 숭배로 봐? 그냥 롤모델 존경하는 정도로 보면 되잖아?
  • 교리 안 중요한데 왜 일요일날 예배 빠지는 건 용납을 못해?
  • 누구보다 성경 읽기와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야. 근데 십일조는 안 내. 넌 이 사람을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해줄 수 있니?
  • 왜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 12장의 여인을 마리아로 해석하지 않고 교회라고만 해석해? 교부들은 마리아로 해석하는데?
  •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라고 해서 전도하는 거 아니야? 교리가 안 중요한데 무례하게라도 전도하는 이유가 뭐야?

 

 누구보다 교리를 사랑하고 칼같이 지키려는 개신교가 자유로운 종교인 척 하는 걸 보면 웃기지도 않다. 이제 교리가 안 중요하다는 거짓말은 그만하자. 교리가 안 중요한 종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5) 발의되지도 않은 법을 반대하는 기이한 현상

 

 작년 개신교계에선 1027 연합 예배라는 이름으로 입법되지도 않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를 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전도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LGBT 사람들이 늘어나 문란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되면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킬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왜 그들의 주장이 틀렸는지 하나하나 뜯어서 설명하겠다.

 

  • 소수자는 소수자일 뿐이며, 문란은 개인의 도덕성 차이일 뿐.

 소수자는 소수자일 뿐이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든 말든, 성소수자의 수가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일은 없다. 성적 지향은 인류 집단 안에서 일정한 비율로 존재해온 정체성이다. 그리고 사회가 ‘문란해지느냐’는 성적 지향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도덕성, 성적 행동 방식, 사회적 규범의 문제다. 이성애자라고 해서 더 도덕적이거나 건전하다는 보장은 없으며, 동성애자라고 해서 인성이 나쁘거나 문란한 것도 아니다. 성병 감염 패턴 역시 ‘성적 지향’보다 위험한 성적 행동의 방식이 훨씬 더 큰 요인이다. 특정 집단의 성적 지향이 문제가 아니라, 콘돔 사용 여부, 성매매 여부, 다수 파트너 여부, 검사·치료 접근성 등의 요소가 감염률을 크게 좌우한다. 즉, ‘동성애 = 문란’이라는 도식은 사실과도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성적 지향 자체가 문란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성적 행동이 이루어지는지가 감염 위험을 좌우한다는 연구들에서도 나타난다.

 

 

  •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전도가 안 된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서 보장해주는 국가이다. 이 종교의 자유에는 신앙 생활의 자유도 포함되어 있으며, 신앙 생활의 자유 안에는 포교의 자유(전도의 자유)도 포함이 된다. 이 법이 종교의 자유를 위반하는, 그러니까 헌법을 위반하는 법이라면 상위법을 위반한 하위법인 동시에 위헌이다. 이러한 법은 생길 수도 없으며, 만일 생겼다고 해도 위헌으로 판정되어 헌법재판소 측에서 폐지를 요구할 것이다.

 

 

  •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킬 것이다/입법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 친명계 내각의 인사들을 보자. 지금 국무총리가 된 김민석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며, 신앙적 근거에 따라 차별금지법을 반대했다. 친명계 의원 중 한 명인 이언주도 동일했다. 이언주는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없다"라고 밝혔으며, 개인적으로도 개신교 신자로서 차별금지법 발의를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법안"이라며 논의부터 미뤄뒀으니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 특히 지금 민주당 지도부인 박찬대와 정청래도 매우 독실하기로 유명한 안수집사인데 어디가 그렇게 걱정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6) 선택적인 정죄

 

  개신교의 어떤 폐단에 대해 지적하면 상당수의 개신교인들이 "정죄하지 말고 기도해라"라고 말한다. 그게 아니면 "기도하는 방법 밖에 없지"라는 말로 묵인을 선택했다. 내가 본 개신교인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쇄신하지?"를 논하지 않고, "이 불편한 비판을 어떻게 무마하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런 비판을 들을 때면 "어떻게 고쳐야 할까?"를 논의하려 하지 않고 늘 "우리 교회(목사님)은 안 그래", "거긴 이단/사이비야", "거긴 일부야. 다른 곳은 안 그래"라는 말로 비판을 흐리는 데만 급급했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은 정죄니까 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동성애자나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에 대해 죄인이니 적그리스도니 하며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동반해 정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사고가 가능하긴 한지 의문이 들었다.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죄인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전광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동성애자를 축복한 목사는 즉시 출교를 해버리지만, 성범죄 목사의 출교 재판은 미룬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시위나 기도, 서명운동에는 열심히 참여하면서 위헌인 12.3 사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내가 제일 어이없었던 순간은 어느 대형교회 목사가 청년부 톡방에 올린 글을 읽은 때였다. "대통령을 비판하지 말고 나라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며 계엄에 대한 비판을 삼가라는 장문의 궤변을 는 말로 비판을 삼가라는 의도의 글을 썼다. 나는 이걸 쓴 목사도 그렇지만, 이 글에 어떤 분별력도 갖지 않고 수긍하는 청년들이 더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매번 부흥을 논하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사고는 고사하고 민주주의 아래 사는 국민으로서의 분별력도 없다면 그 사람들이 사제직, 왕직, 예언자직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본인네 교파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었던 모 대형교회 과로사 사건, 아프간 피랍사건, 수많은 성범죄 목사 등에서뿐만 아니라 청교도가 미국에서 일으킨 사건, 가톨릭이 화형을 폐지한 이후에도 쭉 화형을 지속해온 점 등에 대해서는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본인네 교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면서 그저 약 500년 전 중세 천주교의 부패에서 벗어나 개혁을 시도했다는 것만 몇 세기 동안 훈장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개혁과 쇄신을 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를 향해 수많은 정죄를 쏟아내고 있다. 이래도 개신교가 진정한 개혁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

 

 

 

7) 성경에 대한 왜곡된 시각

 

  • 성경의 정경화 작업으로 보는 오직 성경이 틀린 이유

 

 교파마다 살짝씩 다르긴 하지만 개신교는 66권, 천주교 73권, 정교회 76권을 성경으로 인정한다. 일단 세 교파 모두 신약은 27권으로 동일하다. 가톨릭은 초대교회에서 쓰던 70인역 성경을 구약 성경으로 인정했고, 개신교는 유대교와 동일하게 히브리어 원본이 발견되지 않은 39권만을 인정했다. 정교회는 가톨릭에서 인정하지 않은 부분을 추가로 더 인정해 76권이 되었다. 이 정경화 과정에서 구약, 신약 모두 빠진 부분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 이 책을 넣고 빼고는 누가 결정했을까? 교회가 결정했다.

 

 성경의 정경은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쓴 것에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 중 정경과 외경, 위경을 구분하여 편집했던 지역 교회들과 공의회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자기모순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라는 책 목록 자체가 전통과 교회의 권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 중세 가톨릭의 성경 개인 소유/읽기 금지령

 

 이 주장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례가 툴루즈 공의회인데, 이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처럼 보편 공의회가 아니라 지역 주교가 소집한 지방 공의회였다. 나라로 치면 “국무회의”가 아니라 “시·도의회 수준”의 결정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그 권위는 지역적이며 제한적이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알비주파(카타리파) 등 이단 운동이 매우 활발했고, 그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퍼뜨리기 위해 왜곡된 성경 번역본을 대량으로 배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단들이 배포하는 비정통 번역본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반 신자의 성경 소지와 '해설 없는 개인 해석'을 한시적으로 제한한 것이었다. 이는 가톨릭 전체의 정책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특정 시기에 필요한 ‘임시 조치’였으며, 교황청이랑은 관련이 없다.

 

 또한 흔히 퍼지는 “성경은 라틴어만 존재했고, 가톨릭이 번역을 금지했다”는 주장도 거짓이다. 루터보다 훨씬 이전부터 성경은 여러 언어로 널리 번역되어 있었다. 불어, 독일어, 체코어 성경은 이미 13세기에 존재했으며 영어 성경은 14세기에 이미 존재했다. 이태리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스칸디나비아어 성경 또한 루터 이전에 존재했다. 가톨릭이 금지한 건 성경 읽기가 아니라 성경을 교도권 밖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봐야지 옳다고 할 수 있다.

 

 

  • 루터는 오직 성경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루터가 오직 성경을 외치면서 정작 성경을 번역할 때는 멋대로 번역했다는 사실은 개신교 신학자들도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로마서 3장 28절을 번역할 때 ‘오직(allein)’이라는 단어를 넣어 번역하였다. 이건 그리스어, 라틴어 성경에도 없던 단어였다. 그러나 루터는 오직 믿음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없던 단어를 넣어 고의로 오역하였다. 오역만 했을 뿐 아니라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며 신약의 맨 뒤로 밀어버렸다. 믿음뿐 아니라 행함으로도 의롭게 된다”라는 구절이 루터의 교리와 대치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유다서, 요한묵시록도 정경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멋대로 바꿔 번역하는 사람을 종교개혁의 선두주자라고, 성경적인 개혁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이 과연 오직 성경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는 굉장히 의문이다.

 

 

8) 근본 없는 노스탤지어

 

 오직 성경을 주장하면서 사도전승 등 성전(Traditio)을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이 만든 것"이라 규정하며 버려놓고서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얼마나 웃긴지 모르겠다. 특히 교부들의 주장과 완전히 반대되는 교리를 세워놓고 믿으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말을 하는 개신교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대교회를 무슨 만남의 장으로 착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초대교회는 "성령이 가득 찬 상태로 빵을 나눠먹는 친목의 장"이었다. 하지만 실제 초대교회는 달랐다. 지하 교회에 숨어서 박해에 벌벌 떨며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믿어야 했다. 그리고 지하교회에서 빵을 나눴던 것은 성체를 나누는 것으로, 식량이나 간식 같은 음식의 나눔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희생제사였다.

 

 성체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있다. 초대교회는 화체설을 믿었다. 화체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단이라고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개신교는 화체설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각자 성체에 대한 입장이 달랐다. 루터는 공재설(임재는 맞지만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지는 않는다)을 주장했다. 츠빙글리는 기념설(표징이며, 실제로 임재하지 않는다), 칼뱅은 영적 임재설(변화는 없지만 성령이 실제로 임재한다), 웨슬리는 성찬은 은총이 전달되는 자리일 뿐 화체설을 믿지는 않았다. 이런 개신교의 각자 다른 주장은 초대교회 교부들의 주장과도 확연히 달랐다. 이에 대해 에라스뮈스는 "남을 가르치기 전에 너희끼리나 일치하여라"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초대교회 교부들의 가르침이나 성찬 같은 예식은 전부 버려놓고 초대교회를 논하는 걸 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초대교회로의 회귀를 논하기 이전에 교부학부터 공부해보는 건 어떨까.

 

 

9) 성령은 귀신인가

 

 개신교인들을 보면 예배 도중 울거나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것을 성령의 임재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울음과 방언(알 수 없는 횡설수설)은 기독교만의 현상이 아니다. 샤머니즘, 무속, 힌두교, 오순절파와 비슷한 타 종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감정 폭발”이나 “이해할 수 없는 발성”이 과연 성령일까? 성령은 본래 어떤 존재인가? 성경을 보면 성령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성서적 근거
종류
갈라티아 5장 22-23
성령의 열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비(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
이사야서 11장 2-3
성령칠은: 지혜, 통찰, 모략, 용기, 지식, 경외, 경건
코린토서 12장
은사: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치유, 기적을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통역


* 방언은 외국어나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지만, 통역은 이 방언을 우리가 알 수 있는 말로 번역해 공동체에 줄 수 있어야 한다.
로마서 12장
은사: 봉사, 가르침, 권면, 자선, 지도(다스림), 자비


* 이 은사들은 초자연적 능력보다 공동체 섬김, 사도적 사명에 중점
에페소서 4장
은사(직무적 성령 은사): 사도, 예언자, 복음 선포자, 목자, 교사


* 이 은사들은 현대 교회의 직무직으로 발전했다.

 

 여기서 보면 은사는 타인에게 봉사를 하라고 주는 것이다. 타인에게 유익하게 쓰일 수 있는 능력이나 성질을 은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봤을 때, 성령은 사람을 시끄럽게 하거나 감정적으로 고양되게 하여 울게 하는 등 개인 감정에 변화를 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은사로 인해 타인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방언도 그렇다. 누군가가 방언을 하면, 누군가는 통역을 할 수 있어야지 성경적으로 맞는데 지금 개신교에서는 방언의 은사만 있고, 통역의 은사는 아무도 갖고 있지 않다. 이래도 그 방언들이 은사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떠한 재능이 은사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내가 지금 받는 감정과 이 행동이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 쓰이고 있는지 반드시 재고해봐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예언할 수 있기를 더 바랍니다.
누가 해석을 해 주어 교회가 성장에 도움을 받는 경우가 아니면,
예언하는 이가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이보다 더 훌륭합니다.

- 1코린 14, 5

 

 

10) 무식함을 조장하는 문화

 

  위의 아홉 가지 문제를 낳은 가장 근본 원인은 결국 무식함, 즉 신앙의 기본을 이루는 성경·전통·교리·역사에 대한 심각한 무지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사리분별이 안 된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 능력, 최소한의 문해력, 그리고 역사적·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당연히 필요하다. 괜히 그 수많은 신학자들이 성서학이란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한 것이 아니다. 올바로 알아야지 올바로 적용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걸 경시하고, 교회에서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개인이 읽어야 한다고만 강조하니 성서를 잘못 해석했을 때 그것을 막아줄 방법도, 해석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할 방법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쉽게 이단에 빠지는 것이다.

 

 또한 이런 현상을 낳게 만드는 교리 교육에서도 깊은 심각함을 느꼈다. 새가족 교육에서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성경 해석에 필요한 부분들은 전혀 설명해주지 않고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았다", "모든 건 성경에 나와있다"라고만 말한다. 그러다 그 지식을 요구하면 "그게 뭐가 중요하냐,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로 어물쩡 넘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얕은 지식의 상태로 감정만 차 이런저런 얘기를 해대니 외부인들이 들었을 때 개신교의 교리들이 허무맹랑한 얘기와 자신들에 대한 저주로 들릴 수밖에.

 

 초대교회 교부들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성경과 신학을 깊이 탐구하기 위해 그리스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연구했고, 서방 문화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현지의 언어와 그들의 사유 체계를 익혀 복음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했다. 그런 지적 노력과 치열한 탐구가 있었기에 박해 속에서도 신앙이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부흥을 논하면서도 자기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지식조차 모르고, 설명할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어떠한 심각성도 못 느끼고 있다. 이런 집단이 무슨 수로 부흥할 수 있을까?

 

 부흥을 떠나 한국 개신교는 본인들이 그리스도의 적이 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목사가 앞에서 무엇을 말하든, 그 말이 맞는지 틀린지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분별력은 필요한데, 이 분별력을 가진 사람을 "교만"으로 낙인찍는다. 이런 식으로 매주 가스라이팅을 당하니 설교 내용이 엉망진창이어도 그게 옳은지 그른지 식별조차 못하고 받아 적기만 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성경 본문과 정반대의 말을 해도 “아멘”을 외쳐버리는 사람들도 꽤 많이 봤다.

 

 결국 배우지 않고, 알아보지 않고, 질문하지 않게 만든 환경이 성경 해석의 왜곡, 교리의 부재, 감정주의, 반지성주의의 주류화라는 최악의 상황을 낳은 셈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무지를 미덕처럼 여기는 풍토에서 건전한 신학과 합리적 분별은 자라날 수 없다. 문제는 단순히 몰랐다는 데 있지 않다. 무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무지를 신앙으로 포장한다는 데 있다.

 

 


 

추가 코멘트

 

  일단 생각나는 부분이 여기까지라 이 정도로만 적어봤다. 이외에 더 생각난 부분이 있으면 이후에 덧붙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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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에 대해 썼던 글이 있었지만, 업데이트 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다시 올려본다.


 

  일단 난 4대째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양가가 그런 건 아니고, 친가 쪽이. 외가 쪽은 제사만 지내는 무종교.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종교에 대해 희생을 감수하고 결혼했던 건 아니다. 엄마는 종교가 없었을 뿐더러, 엄마가 살던 동네에는 교회도 없었다. 엄마는 아빠가 교회 출석에 대한 어떠한 강요도 없고, 타종교에 대한 어떤 근본주의적 생각이나 흑백논리도 없어서 오히려 호감이었고, 그래서 세례를 받고 잠시 다녔던 거라고 했다.

 

 친가쪽은 양가 모두 개신교 집안이었다. 할아버지 쪽은 할아버지 포함 14명 정도의 형제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큰 집안의 장남이라 상속받은 유산이 굉장히 많았다. 정확한 액수를 알 수는 없으나 듣기로는 평생 일하지 않아도 서울에서는 중산층 정도의 삶을, 지방에서는 최상위의 삶을 살 수 있는 정도였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다른 형제들이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한테 자주 돈을 요구했고, 할아버지는 형제니까 그냥 주셨다고 한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러 번 돈을 요구하니 돈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 돈이 거의 바닥이 나서 돈을 벌기 위해 취직을 해야 했다. 그렇게 취직한 곳이 한국제지 공장 감독. 하지만 감독을 하던 중 종이 펄프가 할아버지 다리에 떨어지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못 쓰시는 장애를 갖게 되었고, 할머니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렇게 할머니가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때도 이 염치없는 형제들은 돈을 요구했다. 그 사람들의 극성스러운 요구에 지친 친가는 할머니의 동생이 사는 지방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지금 살고 있는 지방에 정착하게 되었다. 정착 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할아버지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게 됐다. 지방에 내려온 뒤 20년동안 우리 친가를 쳐다도 안 보던 그 염치없는 13명의 형제들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되어서야 지방에 찾아왔다. 이 사람들은 비열하게도 아빠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것도 할머니만 있을 때 찾아와서 "불여시같은 네가 우리 형제를 잡아 먹었다"와 같은 폭언을 일삼으며 깽판을 치고 갔다. 이 깽판을 친 형제들이 모두 개신교인이었다.

 

 할머니 쪽 집안도 사정은 있었다. 할머니 쪽 집안도 모두 개신교였다. 할머니는 8살 때 6.25라는 큰 사건을 겪어야 했고, 할머니의 아버지는 북한 출신이 아님에도 미군에게 학살당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남편이 미군에게 학살당하는 모습을 본 후 '미국 종교의 신을 내가 왜 믿었나?'라는 의문을 품게 되고, 개신교에 대한 염증을 느끼게 된다. 아랍의 유일신 야훼를 미국 종교의 신이라고 보는 건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지만, 한국 개신교가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가 들어와서 생긴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무튼 할머니의 어머니는 그렇게 개신교와 그 신에게 염증을 느끼게 됐고 불교로 개종 후 암자로 들어가 여생을 보내셨다.

 

 그럼에도 할머니와 아빠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할머니는 권사, 아빠는 집사. 아빠의 말로는 그런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종교를 버릴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와 할머니는 꽤나 독실한 신자였다. 나는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받았고, 엄청 어린 나이일 때부터 일요일은 당연히 교회를 나가는 날이라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됐다. 하지만 여섯 살, 일곱 살 즈음 되어서는 '(근본주의적) 성경무오설', '일요일에 교회 안 가면 지옥', '안 믿으면 지옥', '보지 않고 믿는 자 복되도다', '믿는 사람은 무조건 천국'과 같은 교리의 이상한 모순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토론할 지식과 언변이 없어 입을 닫고 교회에 다니고 있던 중 아빠가 교회를 안 나가기 시작했다. 

 

 아빠는 이명박 정권 전후로 개신교 신자들의 만행을 보고 나서 35년 간의 개신교 생활을 정리했다. 그렇다고 무신론자가 된 것은 아니고, 개신교에서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내게 개신교를 떠날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한 번은 제주도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주기도문 문구가 생각났다. 그리고 하늘을 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하늘에 계신다고 하기에 하늘에 있을 줄 알았는데 하늘에는 구름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때부터 나는 '목사님이 헌금 벌기 위해 거짓말을 팔고 다니기 위해 만든 것이 교회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도 이 종교를 탈출할, 정확히 말하면 교회를 나가지 않을 명분이 내겐 없었다.

 

 

그러다 교회에 안 나가도 되는 명분을 찾게 된다.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뒤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학 간 초등학교는 유명한 사찰 근처에 있는 학교였다. 여기가 나름 큰 문화유산이라 그 절과 학교가 MOU를 맺고 있어 자주 그 절에 드나들 수 있었다. 그리고 스님에게 불교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때 스님은 누구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저는 교회에 다니는데, 저도 부처가 될 수 있나요?"라고 물으니 그 스님이 "종교가 무엇이든 깨달음을 얻는다면 부처가 될 수 있어요"라고 하셨다. 난 그 말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인일 수는 있어도 선행을 한다하여 하나님이 될 수는 없는데 여기는 그게 가능하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양쪽 교리 둘 다 잘 모르는 상태로 얕은 마음으로 속단한 거였지만. 그렇게 나는 불교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며 개신교의 교리가 무척 비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가끔 할머니의 간청으로 여름성경학교나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한 적은 있지만 그때도 신앙심이 있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그 뒤로 여러 일들을 겪으며 난 무신론자(불가지론자, 반신론자)가 되었다. 개신교인들의 기괴한 만행들이 언론에 많이 보도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나는 실제로 겪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과도한 노방전도와 저주(너는 불교니까 구원을 못 받는다), 성서문자주의적인 발언들,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 만난 개신교 친구 대부분들이 근본주의자였고 또 전광훈을 옹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에게 반박을 할 때 하더라도 개신교 자체를 미위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교회를 안 다닌지 14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국비학원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세 타입의 개신교 신자를 만나게 된다. 골수 개신교, 개신교 뉴비, 탈교회한 분. 일단 골수 개신교는 같은 수강생이었고, 뉴비랑 탈교회한 분은 강사님임을 먼저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골수 개신교는 전형적인 개독이었다. 나와 그 골수 개신교가 종교 얘기를 하다가 탈교회한 그 강사님과도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탈교회한 강사님이 본인은 30년 넘게 다녔고, 집사까지 달고 교회를 안 다니게 됐다고 했다. 그때 그 골수 개신교가 "선생님, 다시 돌아오실 생각은 없으세요?"라고 물었는데, 그때 강사님이 하신 답변이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네가 다른 사람 한 명이라도 믿게 한 뒤에 나한테 와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러면 그때 생각해볼게.

 사실 개독이라고는 써놨지만, 그 골수 친구를 처음부터 개독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나는 그냥 '독실하구나' 생각하고 넘겼고, 내가 성경이나 교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골수 친구도 '네가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다'고 인정을 했을 정도니까. 근데 그 사람과 팀플을 하면서 '개독'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교회 사역 때문에 주말 전체를 교회에 썼던 것 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돌아와서도 교회 일을 하며 팀플 일은 대충했다. 대충 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안 한 수준.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며 다른 팀원과 주말을 반납하고 팀플을 하던 중 그 골수에게 전화가 왔다. 그래서 받았더니 하는 말이 "나 4시에 찬양팀 연습 있는데 할 게 없어서 전화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할 게 없어서...? 너무 어이가 없고 화났지만 여기까지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그 사람이 돌아온 뒤 잠자고 유튜브하는 걸 보고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해버렸다. 원래 팀플 담당하던 강사님에게 이야기 안 하고 해결해보려 했지만 어디다가 풀지라도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글로 담아 다음날 그 강사님한테 보여줬다.

 

 아까 위에서 언급한 그 뉴비가 이 강사님이다. 강사님이 글을 쭉 읽으신 후 나를 바깥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건 도피성 사역이다. 이럴 거면 선교사나 전도사를 해야지"라고 하셨다. 일단 이 분은 개독은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몰려있던 화가 그 말에 다 풀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얘기를 하다보니 이상하게 급발진을 하게 됐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사람들을 고칠 때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했었는데, 그때 예수님이 안식일이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냐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교회에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왜 행동은 율법주의자들이랑 똑같이 해요? 마가복음 9장 42절에 남의 믿음 떨어뜨리면 연자맷돌에 묶어 던져버릴 정도로 그 죄가 크다고 나와있는데 왜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교회만 다니죠? 요즘 개신교는 기본적인 교리 교육이나 성경 내용도 안 가르치나요? 그럴 거면 종교를 왜 믿을까요? 무교인 나보다도 본인네 종교에 대해 아는 게 없고, 행동은 바리새인처럼 하면서 교회 다닌다고 떠들고 다니는 개신교인들을 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강사님은 다 듣더니 내 말에 대한 코멘트는 따로 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골수와 대화를 해보라는 결론을 내주셨다.

 

 그래서 그 골수랑 대화를 하게 됐고, 여전히 대화는 안 통했다. 20분이면 끝날 내용을 2시간 동안 끌고 있으니 너무 피곤했다. 이대로 대화하면 하루종일 해도 답이 없을 것 같아 급하게 마무리짓고 난 글에다 다시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원글이 없어져서 그대로 인용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원래도 안 다니고 있었지만 더 안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도 개신교 집안이었고, 그래서 성서와 교리에 대해 전혀 모르지 않는데 왜 개신교 애들이랑은 말이 더 안 통할까. 독실하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나보다 성경과 교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는 교회에 발도 안 들이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단락을 보고 그 강사님이 잠깐 고민을 하다 입을 여셨다. "이건... 개인적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교회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너도 성서와 교리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하니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이건 로마 시대 때부터 그래왔고, 그 사람들끼리 사랑하라고 하는 게 교리잖아.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많을텐데 그 사람들을 기독교(개신교)라고 걸러버리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도 좁아질 거고. 네가 이번 일로 화가 난 건 알겠지만, 이번 일 때문에 기독교(개신교) 사람들한테 선입견을 갖게될 것 같아서,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서 하는 이야기야."

 

물론 논리로 따지고 들면 흠이 꽤 있는 말이었다. 내가 그 골수한테 완벽함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으며, 내 이런 생각이 단순히 이 골수 하나만으로 생긴 일은 아니라는 말 등등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논증을 할 일도 아니었지만, 이 분이 그 골수를 두둔한 것도 아니었고.

 

그 일이 있은 후 조금 지나 성경을 다시 파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여러 명의 개신교를 겪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신앙심이 갑자기 든 건 아니었지만. 아, 방금 쓴 골수랑은 그 다음달에 손절했다. 그 뒤에 굉장히 기분이 더러워진 상태였지만, 이상하게 그 강사님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날 그분께 따로 연락을 드렸다.

 

 이후 나는 내 종교 정체성을 개신교로 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나가지 않는. 그렇게 종교는 있지만, 교회 출석은 안 하는 그런 상태로 몇 개월을 살았다. 하도 교회가 많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던 그런 마음과 괜히 잘못 들어갔다가 이상한 소리라도 들으면 개신교 자체에 정을 떼버릴 것 같아서 교회 출석을 반 년 정도 미뤘다. 그러다 컴퓨터 수업을 들으러 간 곳에서 독실한 권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과 종교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권사님이 다음주 주일에 비신자를 초대해서 전도하는 축제를 한다며 초대해주셔서 그분이 다니시는 예장합동 소속 교회에 잠시 다니게 되었다. 듣기에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바로 등록 후 다니기 시작했다. 첫날에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운동과 1027 연합예배를 독려하는 모습을 보며 "이게 뭐지..?" 싶었지만 나에게 서명이나 참여를 강요하지 않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 후 새가족 수업을 듣는데 몇 번의 뇌절이 왔는지 모르겠다. 창조설을 문자주의적으로 믿는 사람도 있었고, 온갖 행사에 밀려 교회를 두 달이나 다녔지만 수업은 1주차 밖에 나가지 않았다.(6주 과정) 그리고 수업을 듣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다."라는 말 외에 다른 것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이후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했다. 그 교회에만 그런 감정을 느꼈다면 교회를 옮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그 교회 뿐 아니라 개신교의 예배 방식과 신학, 사상에도 동의하지 못했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하나님의 열심>이나 <목적이 이끄는 삶>, <팀 켈러 시리즈>, 칼뱅의 <기독교 강요>, 존 밀턴의 <실낙원>, 존 번연의 <천로역정>,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등 책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실낙원> 외에는 와닿거나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특히 마틴 로이드 존스나 팀 켈러, 조정민, 유기성 등 개신교에서 자주 읽히는 복음주의자들이 쓴 책들은 아무리 읽어도 적응이 안 되고 납득도 되지 않았다. 교리로 들어가면 더더욱 그런 증상이 심해졌다. 루터의 5솔라, 이신칭의 등 어딘가 동의할 수 없는 교리들을 보면 머리가 아파왔다. 사실 이런 것보다 더 적응 안 되는 건 따로 있었다. 방언기도나 주여삼창, 찬양과 설교만 하는 예배 형태, 예배가 끝난 후 셀모임. 이때는 내가 다시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해서 그런 거겠지 생각하며 넘겼다.

 

 하지만 12.3 내란이 발생하며 확실히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종교들은 이에 대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내는데, 대부분의 개신교는 이를 옹호하거나 묵인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도 굉장히 기괴했지만 동시에 개신교 자체가 진리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독교 죄악사>, 아프간 피랍 사건, 냉전이 해체되고 공산주의가 거의 없어지다시피 되었지만 여전히 공산주의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누군가를 정죄하고 혐오하는 데 미쳐있는 신자들, 종교개혁의 진실 등 다시 개신교에 대해 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례 교회와 개신교를 끊임없이 비교해보며 책과 글, 유튜브 영상 등 다방면의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데이터를 톺아보고 분석한 후 완전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개신교는 신학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나 맞는 구석이 없다는 것을. 교파들은 수없는 분열과 타락으로 가고 있지, 개교회주의라 교단과의 결속력도 거의 없다고 봐야지, 사도들과 교부들로부터 이어온 부분이 과연 있나 싶고. 그렇다고 바른 목소리를 내거나 사람들에게 대단한 도움을 준다고 보기도 어렵지. 더 이상 내가 이 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그렇게 추린 선택지가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였다. 내가 사는 곳에 성공회 성당이 있기는 했지만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곳이고, 정교회 성당은 가려면 제일 가까운 곳이라고 하더라도 차타고 2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하지만 성공회와 정교회에 입교하는 게 그 거리를 감수할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았고, 그렇게 추려보니 남은 곳이 가톨릭이었다. 4일 간 개신교에 대한 여러 공부들과 가톨릭 교리와 신학, 미사에 대한 일부의 공부가 끝난 후 가톨릭 성당 출석을 결심하게 되었다.

 

 개종을 결심한 후 우리 지역에 있는 세 개의 본당에 모두 전화해봤다. 당시에는 성당이 속지주의라는 걸 몰랐기 때문에 임의로 '대중교통으로 가기 가장 좋은 순'으로 A, B, C로 순서를 정해보고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봤다. A 본당은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고, B 본당은 이듬해 3월부터 교리가 시작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 예비신자로 등록하고 싶어서 마지막 희망을 갖고 C 본당에 전화를 걸었다. C 본당에서는 이미 수업 진도가 2개월치 넘게 나갔지만, 보충교리 들으면 금방 커버 가능하니 이번 주일에 바로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해당 주일에 처음으로 가톨릭 성당에 가봤고, 일요일 9시에 하는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 후 수업을 들었다. 교리 수업부터 너무 좋았다. 내가 알고자 했던, 내가 받고자 했던 새가족 수업이 이런 수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수업이 끝난 후 바로 교중미사에 참례했는데, 처음 간 사람이 바로바로 하기에 결코 쉽지 않았다. 겉보기에 이런저런 코멘트가 많아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바로 이해할 수 없으니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있었다. 개신교보다는 이게 더 맞는 방법이라는 것. 미사 전례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한 달 동안 정신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의미없단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미사에 참례하면 할수록 여기서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무엇보다 구약-시편-신약-복음으로 이어져 성경의 많은 부분을 봉독하고 강론이 명료하고 짧으며, 전례마다 여러 유의미한 기도들로 채워져있으니 이게 진정한 예배가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 특히 나는 성체를 모시는 부분을 제일 좋아했다. 예비신자 시절 성체를 모실 수는 없었지만 그 성체를 보며 나도 빨리 성체를 모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지금은 성당에서 도보 3분 거리인 곳으로 이사를 와서 간절함이 떨어지긴 했지만 교리를 들을 당시에 살던 집은 성당과 집의 거리가 좀 있는 편이었다.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버스 편이 얼마 되지도 않아 아침 7시 40분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간 후 그 시내에서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고 가야 했다. 그렇게 일찍 나와 9시에 교리 수업을 듣고 10시 반에 교중 미사를 드리면 그날 오전이 거의 다 지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울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30분 정도의 거리였던 성당을 매주 다닌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간절했고, 또 교리를 듣고 미사에 참례하는 시간이 즐거워 그걸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개종 후 내 삶에는 많은 즐거움의 요소가 생겼다. 예쁜 묵주를 사서 그것으로 기도하는 즐거움, 미사보 고르는 즐거움, 성당 곳곳의 아름다운 성상과 성화들, 성당을 가득 채우는 오르간 소리가 너무 좋았다. 다양한 미사도 참례했었다. 우연히 알게 된 분의 혼배미사에 참례하기도 했었고, 도미니코 수도회의 성품성사에 참례하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대축일 미사, 정순택 대주교님이 집전하신 콘클라베 관련 미사와 탄핵 촉구를 위한 시국미사 등 다양한 미사에 참례하면서 나와 같이 있는 신자들이 전부 나와 연결되어 있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너무 좋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때는 명동성당에서 만난 싱가포르 분들과 프랑스 분들과 이야기했을 때다. 나라도 다르고, 언어도, 인종도 다르지만 나와 같은 가톨릭 신앙을 믿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오가는 그 온화함과 대화들을 좋아했다. 예비신자 교리 수업 외에 본당 견진성사 자료를 준비하면서, 이후 가톨릭 신학책과 팟캐스트를 적극적으로 찾아 읽으면서 2000년 동안 쌓인 신학의 탄탄함에 감탄했다.

 

 세례명 고른 이야기도 해야 겠다. 내가 생각해둔 영세명은 클로틸다, 발렌티나, 마리아 고레티, 알렉산드리아의 가타리나, 아우구스티나, 세실리아였다. 물론 아우구스티나랑 세실리아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바로 빼버렸지만. 그러면 네 개의 선택지가 남는다. 발렌티나는 내 생일과 축일이 같아서 먼저 본 세례명이었는데, 처음에는 끌렸지만 세례 세 달 전에 다시 보니 어딘가 끌리지 않아서 선택지에서 뺐다. 마리아 고레티도 끌렸다. 칼로 자신을 17번 찌른 괴한을 용서한 성녀인데, 그 분의 삶은 존경하지만 나랑은 아닌 것 같아 제외시켰다. 그리고 남은 두 선택지는 클로틸다랑 알렉산드리아의 가타리나. 가타리나 성인의 삶을 보니 내 성향과 비슷한 것 같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 이름을 써야겠다는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많이 고민을 했고, 또 기도도 했었던 부분이었는데 결국에 남은 이름은 클로틸다. 지피티한테도 물어보고, 사람들한테도 물어봤지만 결국에 남은 이름은 클로틸다였다. 그렇게 나는 세례 한달 전, 클로틸다로 세례명을 정했다. 

 

 세례명과 대모님이 정해진 후 신부님과 찰고를 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다. 인도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오게 됐는지, 세례명 뭐로 정했는지 정도? 기도문 시험도 그리 빡세지 않았다.

 

 2025년 6월 8일, 성령강림대축일에 세례를 받았고 지금은 언제일지 모를 견진을 기다리고 있다. 개종으로 잃는 무언가도 없었고, 전에 개신교가 너무 불만족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지만 난 개종 후 너무 만족스럽게 성당에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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