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Classic(Literature)

독일인의 사랑(막스 밀러 저)

c_lotild_e 2024. 9. 13. 23:39
 

독일인의 사랑 미니북 | 막스 뮐러 - 교보문고

독일인의 사랑 미니북 | 잊히지 않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향기 막스 뮐러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독일인의 사랑》 철학을 담은 사랑에 관한 불후의 고전 낭만적 사랑의 가르침과 명언을 남긴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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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

 

 한창 이것저것 해야할 때 읽었던 책이다. 이때 책은 읽고 싶은데, 얇고 머리아프지 않은 책을 읽고 싶었다. 진짜 가볍게 읽지만 여운도 챙기고 싶었다.(엄청난 욕심이다) 그러던 차에 집에 사뒀던 이 책을 보게 되었고, 고민없이 읽게 되었다.

 

책 내용 정리

 

  1. 줄거리 한줄요약: '나'와 시한부 마리아의 사랑 이야기. 
  2.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 이때 어린아이의 가슴에는 가장 순수하고 깊은 사랑이 깨어난다. 그것은 온 세상을 품는 사랑이다.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빛이 나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환호하는 사랑이다. 그것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다. (중략) 아아, 그러나 인생의 절반도 살기 전에 그 사랑은 얼마나 작아지는가! 어린아이는 '남'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다. 사랑의 샘은 막히고 세월이 흐르면서 완전히 메말라 버린다. 눈동자는 빛을 잃고 우리는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어둡고 지친 얼굴로 서로를 지나친다. 우리는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답례를 받지 못하는 인사가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인사를 나누고 손을 맞잡았던 사람과 이별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 재회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아무도 증명한 적은 없지만 재회, 재발견, 회상은 거의 모든 기쁨과 만족의 비결이다. 처음 보거나 듣거나 맛보는 일은 아름답고 위대하고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새로워 우리를 놀라게 할 뿐 편안함이 없고 만고하는 데 드는 노력이 만족 자체보다 더 크다. (중략) 그래서 지금의 삶이 즐거운 것인지 낡은 회상이 즐거운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  "진정한 시인이 진리와 아름다움을 완벽한 음률로 노래할 수 있듯이 인간은 온갖 사회적 속박에 굴하지 않고 사고와 감정의 자유를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때 문득 플라톤의 말이 떠올랐다. 언제 어디너사 영원한 것, 그것은 묶여 있는 낱말 안에 깃든 자유로운 정신이다. 
    •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참된 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가 나타나기도 전에 기독교가 먼저 계시를 가지고 다가오기 때문인 것 같아. 그때문에 나도 꽤 불안했었어. 종교의 진실성과 신성함이 의심스러워 불안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전해 준 신앙을 내 것이라고 하는 게 옳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야 .아무런 깨달음 없이 그저 어릴 때 부터 배워서 아는 건 사실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살거나 죽을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믿어줄 수는 없는 거잖아. 
    •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사도들과 초기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서서히 그러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사로잡아야 하는데, 요즘은 절대적이고 강력한 교회 율법으로 아주 어릴 대부터 소위 신앙이라는 것에 복종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여러 격렬한 갈등과 심각한 싸움들이 벌어지는 것 같아. 생각할 줄 알고 진리를 존경하며 신념이 굳은 사람이라면 이내 의혹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말하자면 신앙을 향한 올바른 길이 있는데도 마음속에 의혹과 불안이라는 악마가 나타나 평화로운 삶을 훼방하는 거지.
    • 나 역시 [독일 신학]에서 감동을 받긴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까지 깊이 감탄하진 않았어. 내가보기에 그 책에는 인간미나 시적 감성, 특히 따뜻함과 현실에 대한 경외가 부족한 것 같아. 세기의 모든 신비주의가 구원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긴 하지만, 루터에게서 볼 수 있듯이 신에게 귀의하고 신에게서 용기를 얻어 현실로 돌아올 때 비로소 참다운 구원이 완성된다고 생각해. 인간은 일생에 한번쯤 자신이 하찮은 존재임을 깨달아야 하는 거야.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고 자신의 존재와 기원 그리고 영원한 생명은 초자연적인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뿌리박고 있음을 느껴야 하지. 그서이 곧 신에게 귀의하는 길이야. 설령 이 세상에서 귀의의 길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신을 향한 영원한 향수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지. 신비주의자들이 원했던 것과는 달리 인간은 창조를 소멸시킬 수 없어. 인간이 비록 무에서, 즉 오직 신에 의해 신으로부터 창조되었지만 인간 스스로 무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거야. 타울러가 자주 언급했던 자아 소멸이란 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나 입멸 그 이상의 것은 아니지. 타울러가 말하기를 최고의 존재를 경외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무로 되돌아가길 원하는 사람은 곧 최고의 존재를 위해 가장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고 했어. 하지만 이런 소멸은 창조주의 뜻이 아니야. 창조주는 끊임없이 창조하고 계시니까. (중략) 자신의 하찮음을 깨달은 사람은 또한 자신이 신의 반영이란 사실도 깨달아야만 해. [독일 신학]에 이런 내용이 있어. '완전한 자에게서 흘러나온 것은 완전한 자가 없으면 우연이고 광채이며 반사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 태양에서 나온 광채나 양초에서 나온 불빛처럼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비록 태양에서 나온 광채처럼 실재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 신적인 존재가 들어있는 거야. 그리고 어쩌면 빛을 내지 않는 양초, 광채 없는 태양, 피조물 없는 창조주는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야. 그에 관해서는 다음 구절이 진실을 밝혀 주지. '인간과 피조물이 신의 심오한 충고와 뜻을 이해하려 하는 것은 아담이나 악마의 행동을 따르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신의 반영임을 느끼고 그렇게 보이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거야. 우리는 비춰 주는 신의 빛을 가리거나 꺼 버려서는 안 돼. 충분히 타올라 그 빛이 주위의 모든 것을 비추고 따뜻하게 하도록 해야 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혈관 속에 살아 있는 불꽃을 느끼고 삶의 투쟁을 필요한 높은 영감을 얻게 되는 거야. 아무리 하찮은 소명이라도 그것에서 신을 상기하고 세속적인 것을 신적인 것으로 만들고 순간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신과 함께하는 삶이 되는 거야. 신은 영원한 휴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이니까. 
    • 그녀는 자기 생각을 모두 풀어내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일 수 없었다. 나로서는 그것이 무척 괴로웠지만 사회는 끊임없이 속마음을 숨기라고 요구하고, 그렇게 숨기는 일을 예의나 분별 혹은 현명이라고 멋대로 이름 붙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온통 가장 무도회가 된다. 이러한 세상에 살면서도 솔직하게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랑을 할 때조차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지 못하고 침묵하고 싶을 때 침묵하지 못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보고 헌신하지 않고 시인의 말을 빌려 그럴듯하게 꾸며야 하는 형편이 아니던가.
    • 대자연이 아무리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주더라도, 받는 사람이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부족한 자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코 만족을 얻지 못 하는 것이다. 여배우가 여왕 복장을 하고 무대에 섰을 때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가 의상과 어울리지 않아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면 의상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모욕이 되고 만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기품이 있어야한다. 기품이란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모든 어려움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킴을 의미한다. 정신은 추한 것을 아름답게 바꾼다. 
    • 하지만 이것은 내게 행복의 절정을 맛보게 한 후 영원히 사막으로 쫓아 버리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보석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좋았으리라.
    • 갖가지 상념의 혼합은 시간이 흐르면 영원한 법칙에 따라 저절로 결정체가 된다. 이 과정을 화학자처럼 관찰할 때 우리는 요소들이 이룬 결정체를 보고 놀라곤 하는데 우리가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의외의 물체가 생기곤 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너무나 많은 생각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표한할 어휘는 너무나 적어요. 그래서 말 한 마디에 여러 생각이 담기게 되죠.
    • 비록 세상을 잘 알진 못하지만, 아무래도 이 세상은 그런 사랑이나 신뢰를 인정해주지 않는 모양이야. 그리고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상을 우울한 곳으로 만들고 있어. 하지만 옛날에는 좀 달랐나 봐. 옛날에도 지금 같았다면, 호머는 나우시카처럼 아름답고 건강하고 온화한 인간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테니 말이야. (중략) 요즘 우리에게 사랑이란 결혼이라는 희비극의 서곡에 지나지 않으니까. 정말 그런 사랑밖에는 없는 걸까? 순수한 사랑의 샘은 완전히 말라 버린 걸까? 우리를 취하게 하는 술 같은 사랑이 아니라 신선한 원기를 주는 샘 같은 사랑이 있다는 건 모르는 걸까? 
    • 그들의 시는 수많은 벙어리 영혼들의 가슴속 깊은 감정을 표현해 주잖아. 뿐만 아니라 달콤한 비밀을 고백할 때도 정말 자주 이용되지 않니. 시인의 심장은 불행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 모두의 가슴에서 뛰기에 행복한 사람은 시인과 함께 노래 부르고 불행한 사람은 시인과 더불어 우는 거야. 나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시인은 없는 것 같아. 워즈워스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는데, 그가 시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시인이 아니라는 거야. 하지만 나는 오히려 워즈워스가 시적 과장을 버리고 미사여구나 허황된 시적 감동을 멀리하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거야. 워즈워스의 시는 진솔하고 낱말 하나에 다 담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담아내지. 그는 우리로 하여금 초원에 피어난 들국화 같은, 그냥 발밑에 밟히는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하는거야. 그는 만물의 본래 이름을 그대로 부르고 아무도 놀라게 하거나 현혹시키려 들지 않아. 감탄을 자아내려 애쓰지도 않지. 그는 사람들의 손에 아직 휘거나 꺾이지 않은 모든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 주고 있어. (중략) 그가 쓰는 어휘의 평범함과 친근함,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순수한 사상...
    •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의 말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잖아. 위대한 말이라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하듯 서서히 생각을 발전시키고 끝없는 전망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의 눈을 뜰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음을 알기 때문이지. 
    • "기진맥진 힘겹게 오른 몽블랑보다 가볍게 산책하듯이 오른 동산이 더 아름답고 풍성하고 생생한 경치를 보여 줄 때가 있는데, 워즈워스의 시가 바로 그런 동산 같아. (중략) 감동이라는 것도 배워야 하는 기술이거든."
    • 악의 없이 무심코 분 부드러운 미풍라도 꽃잎을 지게 할 수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너의 삶에 내가 끼어들고 말았어. (중략) 솔직히 말하면 너를 사랑하고 있었어. 하지만 세상은 그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허용하지도 않아. 
    •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냐고 물어봐. 들에 핀 꽃에게 왜 피었냐고 물어봐.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야.
    • 자네가 할 수 있는 한 사람들을 돕고 사랑하며 살게. 이 세상에서 마리아와 같이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 사랑하다 잃어버렸음을 신께 감사하게. 

리뷰

 

  1.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2. 남은 인생 10년 속 클리셰와도 일부 유사함을 지닌다.
  3. 도스토옙스키나 다자이 오사무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 심오하거나 난해한 작품들을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이 책은 중간중간에 신학이나 다른 고전 작품들도 많이 언급 되어서 (내 기준에서)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4. 얇고,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고전 입문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만, 위에 언급했듯 종교나 다른 문학 작품 이야기들이 많이 언급되어서 그런 부분에 대해 배경 지식이 있으면 읽기 수월할 것 같다.
  5. 눈을 끄는 문장들이 많았다. 현란하지 않더라도 인상깊게 남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작품이다.
  6. 로맨스가 메인 내용이긴 하지만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들도 더러 있다.

 

더 읽어보고 싶은 도서들

  1. 워즈워스의 시들